헤르만 헤세의 소설 '지와 사랑'을 아시나요? 이야기 속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두 인물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면서도 끝끝내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들이 가슴에 남습니다. 한 사람은 이성의 중심을 지키며 서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떠돌아다녔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상반된 둘의 모습이 모두 제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느 순간에는 나르치스처럼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했고, 또 어떤 순간에는 골드문트처럼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떠돌아다니고 싶었습니다. 이 소설을 모티브로 두 세계 사이에서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다시 멀어지는 스스로에 대한 고찰을 기록합니다.
마음은 파도처럼 움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끔 원인과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마음 깊은 곳에서 밀려옵니다. 파도가 자유롭게 방향을 틀 듯 갑자기 어디론가 가고 싶고, 넘실거리는 물결처럼 감정이 몸을 흔듭니다. 그 순간만큼은 마치 내가 골드문트가 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는 충동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파도가 부르는 곳이면 스스럼없이 몸을 맡겼습니다. 저는 그의 행동을 직접 따라 하진 못했지만, 마음의 움직임만큼은 누구보다 깊게 공감했습니다.
그런데 제 파도는 가끔씩 현실 앞에서 잔잔해집니다. 감정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저는 나르치스처럼 한 걸음 밖에서 저를 바라봅니다. 주변의 기대, 제가 지닌 위치, 저를 바라보는 시선들. 이런 것들이 마음을 붙잡아놓습니다. 마음은 자유로운데 몸은 움직일 수 없을 때, 그 사이에 잔잔한 체념이 생깁니다. 슬프기도 하고, 이상하게 평온하기도 한 애틋한 감정입니다.
골드문트의 자유가 부럽고, 나르치스의 지혜가 이해됩니다
골드문트가 떠나기로 마음먹은 순간을 떠올립니다. 사랑을 느끼고도 머물 수 없던 그 마음, 안정보다 자유를 택해야만 숨이 쉬어졌던 그의 세계. 그 장면에서 저는 이상할 정도로 '그래, 그럴 수밖에 없지'라고 쉽게 이해했습니다. 이유 없이 움직이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순수해서 더 말도 안 되는 방향을 향하고, 그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나르치스의 마음도 이해합니다. 떠나는 골드문트를 바라보며, 설명하지 못한 사랑을 마음속 깊이 간직한 채 그를 보내야 했던 사람. 그의 사랑은 소리 내지 않는 사랑이고, 그의 이해는 조용히 밝혀오는 촛불 같았습니다. 그는 자유를 막지 않았고, 떠나는 의미를 강제로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태도가 좋았습니다. 자유를 부러워하면서도, 책임을 이해하는 마음이 제 안에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한 방식은 다르지만, 서로를 완성시킨다는 점이 참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슬픔과 평온이 한 자리에 앉아 있는 마음
결국 저는 이 둘의 세계를 동시에 품으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마음은 골드문트처럼 큰 바다를 향해 파도치는데, 현실은 나르치스처럼 단단하게 저를 붙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감정은 늘 두 갈래로 흘러가곤 합니다. 자유를 꿈꾸는 설렘과, 떠날 수 없는 현실을 보는 슬픔. 하지만 이 두 감정이 서로 싸우지는 않습니다. 파도가 잔잔해질 때처럼 천천히, 제 안에서 온도를 맞추며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마음의 자유와 사랑과 예술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을 동경하기도 합니다. 그들의 용기와 열정을 본받고 싶지만 현실에 머물러 있는 것도 힘든 현실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움직이지 못한 마음들은 시간이 지나면 잔물결처럼 가라앉지만, 그 잔물결 속에는 분명한 생명이 남아 있습니다. 그 생명 덕분에 저는 지금도 제 마음을 이해하고, 또한 이해받기를 원합니다. 폭발적인 감정 대신, 잔잔한 체념 속에서 오래 남는 사랑과 삶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살다 보면 마음은 늘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현실은 그 마음을 붙잡아두곤 합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면서도 결국 서로의 결을 이해했던 것처럼, 제 안의 두 마음도 때로는 부딪히고 때로는 하나의 물결처럼 이어집니다.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 순간에도, 저는 그 감정이 제 삶을 흔드는 이유를 천천히 알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날들도 있지만, 그 잔잔한 체념 속에서 저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나다운 모습에 가까워지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이 파도들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게 되는 날이 오길 바라며, 오늘도 제 안의 작은 물결을 조용히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