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오래된 길을 걷고 있으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문득 발밑에 이어진 돌과 흙 사이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이 쌓여 있고, 그들이 남기고 간 숨결이 길 위에 얇게 깔려 있는 것만 같습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과거와 현재가 함께 흐르는 그 공기 속을 걸으면 마음이 조용히 흔들립니다.

시간을 품은 길 위에서
오래된 길을 낡은 건물과 오래된 시장, 세월을 버티며 그 자리에 서 있는 모든 것들은 제가 알지 못하는 수백, 수천 개의 삶을 조용히 품고 있습니다. 그 길을 걸으면서 저는 생각합니다. '이 길은 대대손손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기억하고 있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삼국시대의 누군가도, 조선시대의 상인도, 일제강점기를 지나던 사람도, 그리고 젊은 시절의 제 어머니도 이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아지랑이처럼 살짝 흔들립니다.
특히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길을 걸을 때마다 묘한 감정이 찾아옵니다.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보고 싶은 마음이 들고, 어디에 닿을지 모르는 그리움이 명치끝을 간질입니다. 특정한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길 위에서 사라진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과 기억이 뭉쳐 하나의 온기가 되어 흐르는 것 같습니다.
형체도 향기도 없지만, 분명 제 마음을 스치는 따뜻한 기운이 있습니다. 그 기운은 마치 봄날 아지랑이처럼 가벼운 연기처럼 피어올라 제 발끝까지 번져옵니다.
지나간 사람들의 숨결에 귀 기울이다
오래된 길을 걷다 보면, 이 길은 참 많은 것을 알고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힘든 삶을 버티던 사람, 고민을 품은 사람,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던 사람, 가족과 함께 걷던 사람, 사랑을 속삭이던 연인들, 밥 걱정을 하며 하루를 버티던 사람들… 삶의 소리와 표정과 체온이 모두 이 길 위를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들의 희로애락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길을 만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오래도록 따뜻하게 일렁입니다.
저는 오래된 길을 걸을 때 ‘잘 살아야지’라는 마음이 조용히 올라옵니다. 의무감에서 비롯된 결심이 아닙니다. 그저 이전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이 그렇게 열심히 살아주었기에 제가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지켜낸 하루하루가 지금의 저를 있게 했다는 생각을 하면, 제 삶에도 자연스레 감사와 책임이 스며듭니다.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지금의 내가 견고한 시간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됩니다.
그래서인지 오래된 길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긍정적인 생각이 많이 듭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이 길을 걷는 지금의 내가 분명히 살아 있다는 사실이 환기되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길은 늘 저에게 조용히 말합니다. '너도 잘 살아가면 된다'라고.
스쳐가는 삶일지라도 따뜻하게
저는 이 길에게 기억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로 남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저는 이 길을 걷는 수많은 삶 중 하나일 뿐이니까요. 대단한 일을 할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특별한 흔적을 남기고 싶은 욕심도 없습니다. 그저 지금의 제가 이 길을 조용히 걸으며, 과거의 사람들이 남긴 온기를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제가 느끼는 오래된 길은 미래보다는 과거에 가깝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이 길을 걸을 때면 현재의 나와 과거를 지나간 사람들을 함께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도 같은 길을 걸었다는 사실 하나로 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 연결감이 제 마음에 작은 설렘을 남깁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따뜻한 기운이 마음과 발끝을 어루만질 때, 저는 생각합니다. 삶은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고. 스쳐가는 삶일지라도 괜찮다고. 이 길 위를 걸을 수 있는 지금의 나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하다고 말입니다. 오래된 길은 오늘도 조용히 서서,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담아내며 변함없이 저를 맞아줍니다.
오래된 길을 걷고 나면 마음이 한동안 따듯하게 남습니다. 그 길을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쌓여 지금의 공간이 되었고, 그 흐름 속에 오늘의 저도 조용히 한 걸음을 보탠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특별해지지 않아도, 기록되지 않아도,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삶일지라도 괜찮습니다. 오래된 길처럼, 저는 제 자리에서 조용히 하루를 살아내면 됩니다. 그리고 언젠가 또 어떤 길 위에서, 지나간 시간의 온도를 느끼며 미소 지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