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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에 대하여

by 라우다우 2025. 11. 24.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여러 결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떤 날은 세상과 가깝고, 어떤 날은 이유 없이 멀어지고, 때로는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는 파도를 마주하게 됩니다. 저는 오랫동안 그런 마음의 움직임을 '외면'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 외면에는 나를 지키려는 마음과 설명하기 어려운 다채로움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 글은 그 흔들림 속에서 조금씩 발견한 제 자신을 말합니다.

파도처럼 흔들리는 마음의 결

저는 오래전부터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을 외면하곤 했습니다. 누군가의 말투나 표정, 분위기 같은 것들이 마음을 건드리는 순간에도, 그 감정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채 먼저 제 탓을 찾았습니다. 명백하게 상대방의 실수나 무례함이었는데도, 저는 '내가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동으로 떠올랐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의심했고, 그 의심이 반복되면서 제 안의 파도는 더 거칠어졌습니다.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이런 감정의 흔들림은 외부가 아니라 제 안에서 일어나는 파동입니다. 잔잔한 물결 같은 마음에 누군가 손끝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저는 스스로 커다란 파도를 일으킵니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대신, 감정이 앞서고 해석이 흔들리고, 때로는 사실보다 마음의 결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상황에서도 과거에는 A를 선택했는데 지금은 B를 선택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났고, 그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너는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곤 했습니다. 속인 적도 거짓말을 한 적도 없는데, 갑자기 거짓된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래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단지 그 순간의 마음에 충실했던 사람입니다. 저는 어느 날은 사교적이고 활발하게 움직이지만, 어떤 날은 조용하고 낯을 가리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모습이 가짜가 아니라 그 순간의 진짜였다는 사실을, 저는 조금씩 이해해가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의심하며 멀어지는 객관성

어릴 때부터 저는 마음의 기준선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이건 맞고 이건 아니라고 단정 짓기보다는, 그때그때 상황과 감정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감정이 흔들리는 날에는 작은 말도 크게 느껴졌고, 아무렇지 않은 날에는 같은 말이 가볍게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제 기준은 물처럼 흐르고, 감정에 따라 모양이 달라졌습니다.

이런 성향은 종종 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누군가가 '너는 왜 어제와 오늘이 다르니?'라고 물을 때면, 저는 속으로 당황했습니다. 저는 속인 적도 없고, 거짓을 말한 적도 없는데, 일관성 없는 사람,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 같아 마음 한쪽이 무너졌습니다. 그 말들이 쌓일수록 저는 더 조심스러워졌고, 더 외면하게 되었고, 더 자신의 판단을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이런 마음이 크게 문제 되지 않습니다. 혼자인 순간에는 누구도 저에게 일관성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관계 속에 들어가면 달라집니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 직장 동료, 애인과 같은 사람들이 '나는 아직도 네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라고 말하면, 저는 그 말이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라 나에 대한 부정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마다 제 안의 파도는 크게 흔들리고, 저는 제 감정을 설명할 말조차 잃어버렸습니다.

이해받기 어려운 다채로움 속에서

이제야 저는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저는 변덕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다채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제 안에는 다양한 결의 감정이 있고, 그 감정이 그날의 상황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다른 모습을 만들어냅니다. 활발한 나, 조용한 나, 예민한 나, 낯을 가리는 나, 그 모든 모습은 하나의 얼굴이 아니라, 저라는 사람의 여러 결로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형태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한순간도 거짓이었던 적은 없습니다. 저는 어떤 날의 나도 가짜로 만든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 다채로움이 설명하기 어렵고, 상대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저는 그 말들을 설명하지 못한 채 삼키고 살아왔습니다. 이해받지 못할까 봐, 혹은 상대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까 봐, 제 마음의 진짜 모양을 말하지 못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진짜 나입니다. 흔들리고, 변화하고, 여러 모습을 가진다고 해도, 그 어떤 날의 나도 가짜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솔직한 말로 표현하자면, 저는 단지 마음이 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 흐름이 파도가 되기도 하고 잔잔한 물결이 되기도 하지만, 그 모든 순간에 저는 언제나 제가 될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가짜 나는 없습니다. 흔들려도 여전히 나이고, 이해받기 어렵더라도 저는 변함없이 진짜였습니다. 저는 어떨 때는 초록색이 좋고 어떨 때는 빨간색이 좋기도 한 그런 사람입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이 다채로움이 제게 주어진 자연스러운 결이자, 제가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며 서 있는 강가의 강아지풀 사진

 

우리는 모두 흔들린다고 생각합니다. 감정이 바뀌기도 하고, 선택이 달라지기도 하고, 어떤 날은 나조차 나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해받기 어려운 순간이 찾아와도, 그날의 마음을 그대로 살아낸 우리 모습은 분명히 진짜였습니다. 흔들려도 괜찮습니다. 그 흔들림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 자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