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라지는 것 같다는 말,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여전히 길고, 놀거리는 늘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 시간을 의식하지 않아도 계절이 먼저 몸에 와닿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전까지 봄이었던 것 같은데 이미 여름이고, 아직 마음이 계절에 적응하지 못했는데 또 다른 계절이 다가와 있습니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은 것 같은데도 시간이 스스로 흐르고, 저는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가는 느낌만 남습니다.
어느 순간, 시간이 나를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 특별하게 지내지 않았는데 계절이 훌쩍 바뀌어 있었습니다.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오고, 다시 금방 사라졌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조금씩 다른 일들이 일어났지만, 그 모든 장면이 하나의 흐릿한 덩어리로 묶여 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몰래 내 삶을 조금씩 깎아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릴 때는 시간이 이렇게 빠르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길었고, 계절 하나를 온전히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계절이 다가오고 가는 속도가 너무 가볍게 느껴집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어린 시절 설렜던 장면들입니다. 봄의 바람이 몸을 스치면 그때의 감정이, 여름의 추억이, 가을의 애틋함이, 겨울의 따뜻함이 생각납니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편이 씁쓸해집니다. 보통은 그 해의 기억보다는 과거 생각을 더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아, 또 이렇게 시간이 갔구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또 한 조각이 사라진 것 같은 감정. 그 조용한 허무함이 가장 먼저 찾아옵니다.
반복이라는 이름의 하루가 시간을 압축시킨다
뇌과학에서는 시간이 빠르게 느껴지는 이유를 '새로움의 감소'라고 설명합니다. 새로운 경험이 많을수록 뇌는 그 순간을 오래 저장하고, 경험이 단조로울수록 시간을 압축해 버립니다. 어린 시절이 느리게 흐른 이유도 매일이 생경하고 처음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반면, 우리가 성인이 되고 어느 정도 익숙해진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경험의 밀도는 자연스럽게 줄어듭니다. 그러면 하루는 길게 느껴져도, 한 달은 손바닥처럼 지나가 버립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비율의 원리'라고도 부릅니다. 나이가 들수록 1년이 인생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줄어들기 때문에 똑같은 시간이 더 작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논리적인 이유지만, 감정의 세계에서는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제게 반복되는 하루는 단순한 루틴이 아니라, 무언가를 조금씩 잃어가는 느낌을 남겼습니다. 해야 하는 일들 사이에 끼어 감정이 미세하게 무뎌지고, 즐거움도 슬픔도 깊게 흔들지 않게 되고, 그러다 보니 하루가 지나도 마음속에는 특별한 흔적이 남지 않는 날이 늘어났습니다. 그 빈자리를 시간이 자연스레 지나가면서 조금 더 깎아내는 듯했습니다.
결국 삶은 조용히 깎여 나가고 있다
계절이 빨리 바뀐다고 느낄 때마다 저는 묘한 허무함에 머뭅니다. 무엇을 잃었다기보다는, 무언가를 채우지도 못한 채 지나가 버린 시간에 대한 씁쓸함입니다. 마치 제가 잠깐 고개를 돌리고 있는 동안 삶의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것 같은 감정입니다. 이 허무함은 아마도 성인이 된 이후 점점 생겨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흐름 속에서 한 가지 사실을 천천히 배우고 있습니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건 내가 잘못 살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많은 것을 지나왔기 때문이라는 것. 삶이 깎여 나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깎임 속에서도 여전히 내 마음은 조용히 살아있다는 것.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는, 계절이 빨리 바뀌어도 조금은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나를 스쳐 지나가도, 그 지나간 자리에는 분명히 내가 살아낸 흔적이 남아 있으니까요. 오늘은 창문 밖에서 방안으로 차가운 바람이 넘실대고 있는 계절입니다. 지금의 이 순간도 10년 후, 20년 후의 내가 되돌아볼 장면일 수도 있겠죠.

시간은 우리가 붙잡지 않아도 어느 순간 조용히 흘러갑니다. 때로는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계절을 바꿔버리고, 남아 있는 하루의 감정조차도 얇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 해가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빠르게 지나간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분명히 무언가를 겪고 변화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삶이 깎여 나가는 듯한 씁쓸함도 결국은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흔적일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 역시 같은 속도로 지나가겠지만, 적어도 그 흐름을 조금 더 다정한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